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소미아 유지, 공수처 반대, 선거법 합의를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갔습니다. <br /> <br />스스로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맞서는 필사즉생의 투쟁이라고 하고 다른 정당에서는 엉뚱하다는 시각이 우세합니다. <br /> <br />정치인들의 단식, 무엇을 걸었고 무엇을 얻었는지, 더콕에서 돌아보겠습니다. <br /> <br />군사정권이 독재로 통치하던 시절, 야당 정치인들의 단식투쟁은 민주화를 위한 최후 수단의 성격이 강했고, 정치 방향성을 제시하는 선이 굵은 명분을 걸었습니다. <br /> <br />전두환 집권기 야권의 대표 정치인으로 가택연금 상태였던 김영삼 전 신민당 총재는 광주항쟁 3주년인 1983년 5월 18일부터 대통령 직선제, 언론 자유 등을 요구하며 23일 동안 단식투쟁을 벌였습니다. <br /> <br />그의 단식은 요구조건을 관철하지 못한 채 극심한 건강 악화로 중단됐지만 혹독하게 탄압받던 민주화 세력을 결집시켰다는 평가를 받습니다. <br /> <br />노태우 집권기인 1990년 김대중 당시 평화민주당 총재의 단식투쟁이 있었습니다. <br /> <br />1987년 6월 항쟁 때 집권세력이 약속하고 헌법에도 반영된 지방자치제를 실행하라고 요구했습니다. <br /> <br />단식 13일째, 결국 지방자치제 실시 약속을 받아냈고 이듬해 3월 기초의원, 6월 광역의원 선거가 실시됐습니다. <br /> <br />비교적 최근에 이뤄진 단식은 매우 구체적인 사안이 계기였습니다. <br /> <br />2014년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세월호 특별법을 요구하며 한 달 이상 단식하던 세월호 유가족, 김영오 씨의 단식을 만류하고 그의 요구를 지지하는 차원에서 이뤄졌습니다. <br /> <br />김씨가 건강 악화로 46일만에 단식을 중단할 때 문의원의 단식도 10일만에 끝났습니다. <br /> <br />이 단식은 여야 협상을 압박했고 단식 중단 이후 약 한달 뒤 특별법이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. <br /> <br />민주당원 인터넷 여론조작 사건, 이른바 '드루킹 사건'으로 여야가 줄다리기를 하던 지난해 5월,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특검을 요구하며 단식에 나섰습니다. <br /> <br />9일째 되던 날, 건강 문제로 단식은 중단됐지만 그로부터 열흘 뒤 특검법이 통과됐습니다. <br /> <br />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에도 단식이 있었습니다. <br /> <br />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요구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의 단식입니다. <br /> <br />이 단식을 계기로 여야 5당 원내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을 포함한 선거제도 개편 논의에 나서겠다고 합의를 하면서 10일 간 이어진 단식이 중단됐습니다. <br /> ... (중략)<br /><br />▶ 기사 원문 : https://www.ytn.co.kr/_ln/0101_201911211344203072<br />▶ 제보 안내 : http://goo.gl/gEvsAL, 모바일앱, social@ytn.co.kr, #2424<br /><br />▣ YTN 데일리모션 채널 구독 : http://goo.gl/oXJWJs<br /><br />[ 한국 뉴스 채널 와이티엔 / Korea News Channel YTN ]